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느낌

가족간의 관계가 소원해진 분들을 위한 조언의 글!




                부모나 가족간의 관계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언의 글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고 받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괴로움도 함께 나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괴로움 앞에서도 주어진 인연을 등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도리고 자신를 지키는 것이다.

                ☞ "아흔 개의 봄" 중에서

              '아흔 개의 봄'에서는 결국에는 부모 자식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과정에서의 회한의 눈물을 보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첩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에 겪었던 일로서 어머니가 중혼을하여
              계모로 되었다고 한다. 이때까지 그런 어머니가 미워서 관계가 안 좋았다고 필자는 얘기를 한다.

              결국에는 그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시자 어머니를 위해서 할 일로 어머니의 자식으로
              친자 확인을 해드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대하자 회복이 빨라 지시면서 많이
              좋아지셨다고 한다. 지금은 그동안 못해드린 애정을 맘껏 드리면서 행복하다고 한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하면서, 그것을 책으로  내고, 많은 얘기와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모 자식의 관계는 어떤 자리에 있던 생 이별을 당했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누가 뭐래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어느때고 뿌리를 찾으려 한다는 것이
              본연의 마음이고 누가 막지를 못한다는 것을...

              그 사랑의 힘이 가족이란 테두리안에서 큰 힘을 발휘하며 어떤 중병도 이기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설명을 굳이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살아가는 기본이 가족으로 시작하니 가족의 기본은 부부이고,
              부부가 이루어가는 가족의 단위가 매우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하고

              생각한다. 거기에 딸린 가족의 단위로 자식이란 큰 선물이 아닐 수가 없다. 누가 얘기했듯이 가족의
              단위를 얘기할 때 자식을 빼놓을수가 없다고 말하듯이 사랑의 결실로 만들어진 자식이란 큰 선물이며
              같이 이루어가야할 가정의 모습으로서 완전함을 나타낸다. 이렇게 서로가 같이 단단하게 묶여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가 좋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는 누가 보던지 어딘지 모르게 힘이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유사이래 아무도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라고 가르쳐 준 적은 없지만, 남자가 여자 없이 산 적  
              또한 없다. 아마도 여자가 없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보다 절실히 깨달으면 여자를
              가볍게 여길 수가 없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남자의 주위에는 어머니가, 아내가, 딸이 항상 있게

              된다. 결혼을 안 했더라도 워즈워드처럼 누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거나, 허버트 스펜서처럼 가정부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한다. 누이와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했다면 아무리 훌륭한 철학이라도
              워즈워드의 마음을 구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자와 잘 지내지도 못하며, 비뚤어진 도덕관념으로 살아가는 남자에게서는 일종의 슬픔마저
              느낄 수 있다. 종교에 미쳐 가정을 포기하고, 일에 빠져 가정을 등한시하는 경우를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회단위 중 가장 자연스럽고, 본능을 만족시켜 주며, 의미가 큰 단위는

              가정이다. 사람은 출생부터 사망까지 거의가 가정에 속해 있으며, 또 그런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또 이 가정에는 핏줄이라는, 앞서 얘기한 보다 큰 자아를 확실하고 진실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가 있다. 가정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회생활도 잘할 수가 없다.


                                    

              그러한 부모 자식간의 마음의 상처로 골이 깊어져서 어느순간에 깨우친다해도 이미 때가 늦을 수가
              있다. 늦으면 늦은만큼 후회의 시간이 늘뿐, 관계개선을 위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종교문제로
              우리 아버님과 바로 위에 형님과의 사이가 무척이나 좋지가 않으셨다. 모이기만하시면 제사문제로

              다투시다가 결국에는 몸싸움도 하시게 되면서 결국에는 왕래를 끊으셨다. 그러다가 이번에
              큰아버님께서 암으로 위독해지시면서 연락이 오시는 바람에, 아버님이 문병을 가시고, 두 분이서 

              오래도록 얘기를 하고 오셨다고 한다. 가족이란 그 끈이 남아 있어서 놓지를 못하듯이 이제 가실 날이
              얼마남지 않으신 것을 아시고,  마음 편하게 가시게끔 풀어드린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일찍 했드라면 마음이 덜 아프셨을텐데..옆에서 뵙기가 마음이 아팠고, 다녀오시더니 
              더 부쩍 늙으신것 같았다. 가족간의 다툼은 있을 수 있으나 어짜피 평생가는 혈연인데, 가슴에 담고
               

              마음 한쪽 아프게 살기 보다는 어찌됐든 풀고 사는 것이 마지막 갈 때 좀 더 편하게 가지 않을까 해서 
              이런 저런 생각하다가 글을 올리게 됐다.   

              가족이란 가깝게는 부부로 시작해서 자녀와 부모님 그리고 위에 어르신들과 사촌들의 관계로 본다면,
              친지들과는 무슨 큰 모임이 있기 전에는 서로 왕래가 뜸하니, 때로는 오해가 있을 수도 있어서 될 수
              있으면 큰일의 모임에는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어려서의 끈끈했던 정이 이제는 각자
               

              가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바쁘다는 이유로 얼굴을 못 본지가 너무 오래 된것 같아 반성을 하면서,
              연락이라도 하며 지내야 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을 해본다. 명절이 되니까 가깝게는 동생에서부터
              사촌까지 두루 궁금해지는 요즘이었다. 시간이 더 가기전에 오늘은 연락을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