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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박완서님을 그리며

  

 
 
                  박완서 작가님 : 1931년~2011년 1월 22일 (80세), 경기도 개풍출생(현 황해북도 개풍군)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여성문학의 대표작가 박완서님이 지난 22일 오전 6시경에 담낭암 투병중에 향년 80세의 연세로
                            별세했다.
                            지난해 등단 40주년을 맞았던 작가님은 1970년 40세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
                            이 당선되어 등단한다. 1979년 출간된 '엄마의 말뚝'은 분단과 여성

                            그리고 가족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선
                            으로 작가님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박완서님의 작품에서는
                            주로 6.25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 여성, 그리고
                            가족이 화두였다. 그외 '그 가을의 사흘 동안',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가 있고,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성장소설로 대중의

                             큰 인기를 끌기도 한 작품이 바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이다. 많은 작품을 통해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잡았다.


                            또한 고인은 한국 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
                            인촌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예술상등을 수상했으며, 한국 문학계의 큰 별로 자리 잡았었다.
                            2006년 문화예술계의 인물로는 처음으로 서울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작품세계

                            작가님은 인간의 다양함을 두루 경험할 수 있는 큰 숲 같기도 하다. 시든 수필이든 작가님의
                            작품은 굳이 
                            교훈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고도 많은 것을 간접적으로 배우게 하는 매력이 있다.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소재를 갖고도 반짝이는 재미를 더해주는 타고난 분이다.

                            지금 현재 보고 있는 중인 박완서 산문집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나오는 말중에 여기에
                            짧은글을
                            소개해 본다.

                            "나이 들면서  해외여행보다는 국내여행을 선호하게 되는 것도 지금은 인위적으로 격리돼 돌아갈
                            수 없게
                            된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달래기 위함이 아닐는지 그래서 이름난 명승지나 사람들이
                            바글대는 관광지
                            보다 그런 수선스러운 변화의 물결이 비켜간 산골의 외딴 동네에 더 마음이

                            끌리게 된다. 그런 동네들은
                            소박하기 보다는 인기척 없이 퇴락해서 나도 잠시 물질이 아닌 넋이
                            된 것처럼 이 집 저 집 빈집에 남은
                            남루한 살림의 흔적들을 기웃대기도 하고 툇마루에 앉아
                            무너진 돌담너머로 넝쿨 식물들이 끼고 도는
                            장독대와 멀리 자운영 꽃이 질펀한 들판을
                            바라보기도 한다."


                            아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문체다.

                            이해인수녀님과의 특별한 관계

                            1988년 에 남편과 외아들을 잃으시고, 많이 힘드실 때 친분을 쌓기 시작하며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서로 왕래를 하면서 지냈지만 작가님이 수녀님보다는 14년위라고 한다.
                            지난해에도 11월초에 선생님댁에 가서 저녁도 먹고, 기도도 해 드렸다고,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고.. 이해인 수녀님이 고인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다.
                            "선생님, 선생님이 떠나신 날 눈이 펑펑 내렸어요, 지난해 봄 우리가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던
                            성라자로마을 수녀원 돌층계 위에 눈사람으로 서서 선생님을 배웅했습니다. 선생님 목소리처럼
                             
                            눈은
                            조용조용 내리는데, 선생님도 흰 눈처럼 곱게 가볍게 가신거지요? 아름다운 그 나라에서
                            언젠가 다시
                            만나요. 편히 쉬세요. 사랑하는 선생님. 안녕. 안녕히!"

                            마지막 인사

                            지인들이 많이 애도하는 가운데 가신 선생님은 그래도 외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순박한 외모와 같이 따사로운 마음을 지닌 '어머니'와도 같은 그 모습을 그리며, 많은 이들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상실감의 슬픔을 느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