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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마을에서





 
                  ☆헤르만 헤세가 알프스 지방을 걸어서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에세이와 시로
                  엮은 작품이다. 그 일부를 조금 옮겨본다. 그냥 조용히 음미하고자 한다.
                  9월의 첫 시작!  음악을 들으며 아련한 사랑에 잠겨 보는것은 어떤지..
 
                  낡은 헌 옷 차림에 배낭 하나로 살아 간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가.
                  술집을 찾아 들어 포도주를 밖으로 내다 달라 하고 앉아 있는 동안 갑자기
                  페르치오 부조니의 생각이 났다.

                  "노형께선 무척도 촌티가 나는 구료!"하고  그 사람은 우리가 취리히에서 마지막 만났을 때,
                  마지막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오래 된 것도 아니지만, 말했었다.
                  그때 그는 마알러의 교향악단을 지휘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 낯익은 레스토랑에 같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생각들이 이 자리에서 떠 오르는 것일까?

                  그렇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부조니가 아니다. 취리히도 마알러도 아니다. 이것은 생각들이
                  불확실한 것에 부딪쳤을 때 일어나는 혼동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기억에 있던 영상들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 뿐인 것이다.

                  이제야 나는 이유를 알았다! 그때 그 레스토랑엔 젊은 여자가 하나 앉아 있었다.
                  밝은 금발에 볼이 아주  빨갛던 여자, 나는 그녀에게 말 한 마디 걸어보지 못했었다.
                  천사 같았던 여인! 그녀를 바라본다는 것은 즐거움이며, 또 고통이었다.
                  그 동안 나는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였던가! 나는 그때 젊은 총각이 되어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아름답고, 맑은 금발에 명랑했던 그 여자! 나는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때 한 시간 가량 그녀를 사랑했었고, 그리고 또 오늘 이 산골마을의 양지 마른 길에서
                  한 시간 가량 사랑한 것이다.

 
                  그러나 나만큼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도 없을 것이고, 나만큼 자신을 지배하면서, 절대적인
                  힘을 그녀에게서 느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불성실한 인간이란 지탄을 받고 있는 사람, 나는 여자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그것만을 사랑하는 바람둥이인 것이다.

                  우리 방랑자들은 모두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우리의 방랑벽과 방랑생활은 대부분 그 자체가
                  사랑이고 관능인 것이다. 여행의 낭만이라는 것은 그 절반이 모혐에 거는 기대인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관능적인 것을 변형시키고, 해소시키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충동인 것이다.
                  우리 방랑자들은 사랑의 욕망,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가슴에 품어 두는데

                  익숙해 있고, 또 원래는 여자에게 바쳐져야 할 사랑을 마을과 산에, 호수와 계곡에, 길가의
                  어린아이에게, 다리난간의 거지에게, 목장의 소에게, 새에게, 나비에게, 웃으면서 나누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그 대상물에서 풀어내고, 우리로서는 사랑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마치 방랑
                  그 속에 목적을 구하지 않고, 방랑 그것의 즐거움을 그 과정에서 구하듯이.
                  시원스러운 얼굴의 젊은 여인이여, 나는 너의 이름을 알고자 하지 않는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을 보듬고 간직하고자 하지 않는다.

                  너는 내 사랑의 목적이 아니고, 나의 사랑을 불붙게 하는 동기인 것이다. 나는 이 사랑을
                  길가에 핀 한 떨기 꽃에, 포도주 잔에 스며든 햇살에, 교회의 빨간 철탑에 바친다. 너는 나로
                  하여금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정신없이 반해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내 곁에만 있어 준다면 내 남은 여생을 모든 방랑의 즐거움과 함께 다 내주어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녀 생각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 때문에 나는 포두주를
                  마시고 빵을 먹는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마을과 탑을 나의 수첩에 스케치한다.

                  또 그녀 때문에 신에게 감사한다. 그녀가 살아 있어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을, 그녀를 위해 이제
                  한편의 시를 쓰고, 이 붉은 포두주에 취해 보자.
                  그래서 밝은 남국에서의 나의 첫번째 휴식은 산너머 저쪽의 금발 여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해서 그치게 되었다.

                  그녀의 그 시원스러운 얼굴은 얼마나 아름답던가!
                  그리고 가난한 삶은 얼마나 아름답고, 순박하며, 매력에 찬 것인가! 
                   
                  ※헤르만 헷세의 나그네의 노래 중에서(시와 에세이)



                          ▶갑자기 나도 여행이 하고 싶어진다.
                           열린 마음으로 마음을 한 껏 비우고 모든 것에서의 자유와 사랑을 느끼고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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